삐... 삐... 삐... 스푸트닉이 온다!

흔히 스푸트닉 1호하면 구소련이 쏘아올렸던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정도로 알고있지만, 당시 미국이 받았던 충격은 대단했었던 것 같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뒤졌다기 보다는 핵폭탄의 개발로 인해 그에 오는 파급효과의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그 때 미국인들이 했던 상상과 공포를 떠올리면 은근히 재밌어진다. 아래 글은 원문에서 일부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원문: http://www.batnet.com/~mfwright/sputni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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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의 Baikonur 우주선 기제에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 러시아인들에 의해 쏘아올려졌다. 공산주의의 기술적 우위를 증명하는 사건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대한 선전과 압력으로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스푸트닉에 20~40MHz 사이의 송신기를 장착하여 전세계 사람들의 머리 위에 소련이 만든 인공물이 있음을 알리게 했다.

이건 당시 미국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상원의원인 린던 존슨은 소련이 우주개발에 있어 미국보다 훨씬 앞서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꼬마들이 고가도로에서 아래에 지나가는 차 위로 돌을 던지듯, 곧 그들은 우주에서 우리 머리위로 폭탄들을 떨어뜨릴 겁니다." 전 미국인들은 이 사실에 계속 시달려야 했으며, 신문 헤드라인은 "공산당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다", "소련의 위성, 세계를 90분 마다 돈다" 라는 보도를 연이어 올렸다.

미국인들의 반응:

▶많은 사람들이 궤도에 도는 물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당시 그들에게는 너무 미스테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184파운드 짜리 물체가 뭐하는 거지? 우릴 쳐다보고 있기라도 한거야?"

▶사건이 일어난 다음 학기에 수많은 학생들이 공대에 몰려들었다. 마치 러시아와의 새로운 프론티어에 대한 전쟁을 위해 "군에 입대하는 것" 같았다.

▶태평양의 존스톤 섬에 있는 모든 사람은 권총(sidearms)을 지급받고 항상소지하도록 했다. 섬이 작아 비행기 격납고와 활주로 정도 밖에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짐 도우슨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3학년 선생이 당시 이 사건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었는지에 대해 회고했다.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네브라스카의 오마하였는데 미공군의 전략지휘본부에서 단 몇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어느날 하늘에서 F-100 전투기들이 학교 상공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MIGs! (미그기!)" 라고 경악했다. 곧 소련 전투기들이 핵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라 확신한 그녀는 히스테리컬하게 "MIGs" 라고 외치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역자주: F-100은 흡입구가 기체 주둥이에 위치하여 미그기와 흡사해보인다.) 대부분 공군 추종자(? brat.. 악동쯤되려나..)였던 그의 친구들은 당시 가장 쿨한 기체였던 F-100S를 보기위해 창가에 모여들었다.

▶정치가들과 사설가들이 소련의 과학교육에 뒤쳐졌다며 미국 교육부를 헐뜯기 시작했다.

▶해리 트루만 미 전대통령은 상원의원 죠샙 멕칼디를 통해 미국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학대" 했으며 이는 미국의 로켓과 위성개발을 지체시켰다.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은 이 사건에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에는 1956년부터 소련 영토를 계속 정찰해온 U2가 찍은 소련 기지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이를 통해 아이젠하워는 아직 군사적 위협은 적다고 인지했지만 물론 이 불법적 첩보를 공표할 수는 없었고 정치적 영향을 억누르는데도 실패했다.

미국은 야심찬 '뱅가드' 계획을 세워 우주개발의 초석을 다지려했다. 그러나 뱅가드는 launch pad에서 폭발했으며 모두 이를 'Kaputnik (바보)'라 부르며 조롱했다. 그리고 그건 단지 발사실패였을 뿐만 아니라 스푸트닉 1이 184파운드에 달했던 것에 비해 뱅가드 인공위성은 포도 송이만한 크기였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소련은 이미 한달전 라이카 라는 개를 싣고 1100파운드짜리 스푸트닉 2호를 발사시키는데 성공했었다. 비록 위성궤도로 올라갈 수 있는 로켓은 핵폭탄을 머리 위에 달고 대륙너머에 갈수는 있었지만, 대기권 재진입시 (타버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큰 위협이 못된다고 일부는 주장했다. 그러나 그건 "삐... 삐... 삐..." 라는 90분마다 머리 위에서 울리는 "Razzzzz We beat you! (우리가 이겼다!)" 라는 소련의 외침이었다.

Side Notes about Vanguard::

▶뱅가드 팀은 사실 러시아를 이겨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냉전이 한창인 때 미국과 소련은 ICBM과 IRBM을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고 인공위성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군사적 우선권이 없었던 뱅가드는 예산문제로 버둥거려야했다.

▶1958년 3월 17일에 뱅가드 1호가 마침내 궤도에 올랐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위성이다. 비록 수십년 동안 송신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안정적 궤도에 올렸졌기 때문에 앞으로 수백년 동안 계속 지구를 돌것이다.


1957년 후로 일어난 일들::

▶미국이 단일 부서인 NASA를 만들어 소련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National Defence Education 안을 통과시켰다.

▶미국과 영국이 다시 동맹을 맺었다.


그후 본격적인 우주 진출 경쟁 시대에 돌입했으며, 미국과 소련은 서로 먼저 첫번째 우주인을 내기 위해 경쟁한다. 마침내 NASA가 7명의 첫번째 우주 비행사를 선출하고 공표했고 미국민들은 이번에는 이길 거야라며 떠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다음에 안 사실은 소련 공군 Yuri Alekseyevich Gagarin 소령이 우주에 간 첫번째 인류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가가린 소령 홈피: http://www.kosmonaut.se/gagarin)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다시 달을 향한 레이스로 소련에 승부를 걸었다. 1969년 마침내 미국은 암스트롱의 발자국으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소련은 우주에 상시 사람을 대기 시킬 수 있는 우주정거장 계획에 초점을 맞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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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도 흥미로운데... 다음 시간나면 포스트해볼까 합니다.

스푸트닉을 실은 R7 로켓. 본래는 대륙간 탄도탄을 위해 만들어졌던 로켓이다. 여려 우방으로 소련을 에워싸 언제나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핵폭탄을 개발했음에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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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_type | 2007/09/21 17:39 | 1. 자유낙하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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